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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스와 에로스 사이: 제1차 세계대전기 영국 육군의 성병 대응 노력

Between Mars and Eros: British Army's Fight against Venereal Disease during the First World War

의사학 2020년 29권 2호 p.673 ~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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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총력전'은 교전국들로 하여금 보유한 모든 자원과 에너지를 전쟁에 동원하도록 요구할 뿐 아니라 그 국민들 또한 나름의 방식으로 정부의 '전쟁노력'에 기여할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전쟁을 수행하면서 일부 정부는 국민들의 삶에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간의 구별을 재조정하려 시도한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사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성생활까지도 국가의 '전쟁노력'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감독과 통제를 받게 되기도 한다. 특히 국민의 삶의 특정한 측면이 '전쟁노력'이나 '국가 효율성'에 상당한 해를 입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 정부는 국민들의 가장 사적인 영역까지 면밀히 들여다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제1차 세계대전기 영국 사회는 민간인 뿐 아니라 장병들 사이에서도 크게 확산되던 성병으로 인해 이러한 종류의 '사회적 통제'를 집약적으로 경험했다. 영국 사회 전체가 그랬듯이, 전장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우선적인 책임을 지고 있던 영국 육군도 전쟁 내내 성병이라는 '내부의 적'과 힘겹게 싸워야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과 영연방 장병들 사이에서 성병으로 입원하는 사례는 416,891건에 달했다. 이는 전쟁 동안 영국군에서 복무한 전체 인원의 약 5%가 감염되었음을 의미했다. 전쟁 내내 1개 사단에 해당하는 병력은 성병을 치료해야 하는 관계로 작전에 투입될 수 없었다. 성병은 육군의 인적, 물리적 자원의 심각한 유출을 야기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 군사적 효율성을 상당 정도 손상했다. 그러나 이에 대처하는 영국 육군의 일련의 노력은 당시대 사람들이나 후대의 연구자들에 의해 비효과적이었던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논문은 성병에 대처하기 위해 전쟁 동안 영국 육군이 기울였던 노력에 대해 보다 균형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그 효과성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재평가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육군의 노력이 성병에 대한 영국 사회 전반의 국가적 노력이라는 맥락에서 고찰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들의 '비효과성'은 성병을 어떻게 볼 것이며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영국 사회 전반의 '비결정성'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Total War” calls upon combatant countries to mobilize all of their resources and energies for war and their civilians to contribute in their own ways to the “war effort” of their respective governments. Carrying out such war, some governments try to redefine the distinction between the private sphere and the public sphere in their people’s lives. Even sexual life, the most private sphere in people’s lives, may be exposed to various forms of supervision and control from their states in the name of the national “war effort.” In particular, the government in war does not hesitate to scrutinize the most private sphere of their people’s lives when certain aspects of their lives do considerable harm to “war effort” or “national efficiency.” The British society in the First World War intensively experienced some kind of “social control” due to the increasing spread of venereal disease (VD) both among civilians and troops. Like British society as a whole, the British army, who had primary responsibility to fight the war in the field, had to fight another hard battle against an enemy within VD, throughout the war. During the First World War, VD caused 416,891 hospital admissions among British and Dominion troops. Excluding readmissions for relapses, approximately five percent of all the men who served in Britain's armies in the course of the war became infected. During the war, at least a division was constantly out of action because so many troops had to treat VD. This disease caused a huge drain on the British army's human and material resources and consequently undermined, to a considerable extent, its military efficiency. However, a series of measures of the British Army to improve the high rate of infection among their troops have been simply considered ineffective by both contemporaries and subsequent researchers.
This article aims to provide a more balanced perspective on the efforts of the British Army to fight VD during the war and reconsider the existing understandings in regard to their general effectiveness. It argues that the overall measures of the British Army regarding VD have to be examined in the context of the national efforts of British society to fight against VD as a whole. Their supposed ineffectiveness well-reflected the indecisiveness of the overall British society in terms of both how to view VD and how to fight against it.

키워드

제1차 세계대전; 영국 육군; 서부전선; 성병; 왕립위원회; 성병대책위원회; 예방패킷
First World War; British Army; Western Front; Venereal Disease; Royal Commission; NCCVD; Prophylaxis Pa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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